나로 존재

새 교회를 개척한 이래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통해 우리의 사역과 삶을 지속하게 하십니다. 그러나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안타깝게도 다 목사님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자기 교회에 불러서 함흥 군목이 되어 도와주겠다고 다짐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중개자로서 교회를 통해 도움을 주지만 비용이 많이 듭니다. 도움을 주는 사람은 상류층이고, 도움을 받는 나와 우리 공동체는 하층인 것처럼 가혹하게 대한다. 흥미로운 점은 교회가 먼저 도움을 줬고, 그들의 요청과 과정을 따른 결과가 ‘외면’과 ‘포기’였고, 그들이 돕겠다고 도움을 받은 부분은 사실 매우 적었다는 점이다. 그 “외면”, “낮음”, “약함”이 목회자의 숨은 참 모습이요, 그 사람이 줄 수 있는 최종적인 “맛”이라고 믿습니다. 반면에 큰 도움과 힘을 주시는 성도들은 조용히 사역하고, 기도로 사역하고, 격려로 사역하고, 때로는 이름 없이, 때로는 얼굴도 모르는 채 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울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좋은 열매로 보답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동료 목사로서 부끄럽다. 목회자의 수준, 단순한 표정의 수준은 식구들보다 훨씬 낮다. 낮은 수준. 도움을 받아도 나와 다르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목회자나 상담사들이 왜 이렇게 냉정하고, 뻔뻔하고, 비겁하고, 무례하고, 나약해졌는지… 이 목회자로서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나는 ‘나로 존재하기’에서 원인과 대책을 찾는다. 교회는 목회자들이 거룩하고 영적이고 탁월하며 뛰어난 지도력을 갖기를 원합니다. 문제는 이 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있는 척하게됩니다. 웅장함을 “쇼”하는 것처럼 “사기”를 하고 자신의 것과 같은 “눈가리개”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이 아닌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현실에 ‘나로서 존재’해야 한다. 학생이 배움을 잘하는 “척”이 아니라 실제 “실력”이 있어야 하듯이 목회자도 실력이 있는 “척”이 아니라 실제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구하면 얻을 수 있으니 머물면서 기도하고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나 역시 나에게 없는 능력이 있다고 우기며 나의 부족함과 나의 피를 가리기 위해 “장식”하지 않기를 바라며 나의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자 합니다. 목회자를 도마 위에 올려 놓고 화를 터뜨렸지만 실상은 한국 교회와 한국 목회자들의 사랑과 기대에서 나온 책망이며, 권력을 추구하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훈계이기도 하다. 갈망하다 . 우리가 무엇이든 간에 하나님은 항상 살아 계시고 놀랍게 역사하십니다. 할렐루야!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니라 49 보라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누가복음 24:48-49)

미소교회 담임목사 최준혁입니다.
교회와 그 성역에 대해 더 알아보려면 교회 웹사이트를 방문하십시오.

http://www.miso.church